괴롭힘으로 사망한 네팔노동자의 죽음에 이주인권단체들이 공동의 성명을 냈습니다.
성명서 파일-> 2025_0403_괴롭힘사망_네팔노동자공동성명
지난 2월 22일, 전라남도 영암의 한 돼지 축사에서 28세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故 뚤시 뿐 머걸(Tulsi Pun Magar, 1998년생, 이하 ‘뚤시’)님이 폭언, 폭행, 괴롭힘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은 한국에 입국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낯선 타지에서 사업주의 괴롭힘에 직면해 얼마나 큰 절망과 고통을 느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리는 고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고 책임자가 엄중 처벌받고 대책이 강구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 유린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축사에는 20명의 이주노동자 중 18명이 네팔 출신이었으며, 지난 1년간 무려 28명의 노동자가 사업장을 떠났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업주와 팀장의 폭언, 폭행, 괴롭힘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축사가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방역을 이유로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고립된 채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뚤시가 돼지농장에 온 지 1주일째부터 사장은 일 잘못한다면서 욕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불러서 옷 잡아당기고 몸을 흔들고, 볼펜으로 찌르기도 했다. 이후 뚤시가 일하고 있는 반이 바뀌었는데, 일 잘못했다고 해서 욕하고 점심시간에 뚤시와 일하는 이주노동자 3명을 같이 불러서 ‘조회’(불러서 이것저것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시간)를 하고 뚤시를 1시간 반 동안 그냥 사무실에 있게 하는 식으로 벌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괴롭힘을 당해 정신적 스트레스로 뚤시는 건강이 약해졌고 2월 19일 오전 7시에 기절해서 쓰러졌다. 뚤시는 그 3일전부터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 뚤시한테 사장이 “너 일 할수 있냐 없냐”고 물어봐서, 뚤시는 일하기 어렵다고 하니 사장은 “일 할래 아니면 네팔 갈래”라고 위협을 했다. 그전에도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사장은 그들과 비교하면서 “걔들은 1-2 시간 쉬고 나서 일 했어. 너는 왜 일 못하냐”고 화를 냈다. 또한 뚤시가 진짜 아픈게 아니고 연기하는거라고 했다. 사장은 뚤시를 12시까지 사무실에 있으라고 벌을 주었다.
그날 오후 사장은 뚤시를 데리고 목포로 나갔고 나중에 사장 부인이 와서 뚤시한테 인천공항 가는 버스표와 네팔 가는 비행기표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때서야 뚤시는 자기를 완전히 네팔로 보내버리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네팔 안가고 다시 일 하겠다고 얘기했더니 사장은 화내면서 “그러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고 뚤시는 무릎 꿇고 사과해야만 했다. 다음날 21일 아침 사장이 사무실에 노동자들 다 불러서 다른 이주노동자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서 뚤시는 다시 무릎 꿇고 사과해야 했다. 다음날 22일 오전 7시 출근하려는 노동자가 숨져 있는 뚤시를 발견했다. 끊임없는 괴롭힘과 폭행, 위협이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이 외에도 사장은 다른 여러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폭행과 괴롭힘을 저질렀다. 어떤 노동자는 폭행당해 얼굴에 피가 나기도 해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신고접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사장은 이직시켜 주겠다면서, 자해로 다쳤다는 내용으로 강제로 합의하게 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사장의 말을 안들었다는 이유로 화장실에 하루밤 갇히기도 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농장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갔는데 농장에 다시 불러서는, 농장 일 발설했다고 폭행당했고 농장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얘기하면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협박당해서 발설안하는 것에 강제로 동의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극이 이번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70만 명의 이주민, 14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차별과 소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지자체의 대책은 더디기만 하고, 노동부의 실태파악은 부실하다. 이번 괴롭힘 사망사건은 현장에서 묻혀있었던, 당사자만 말없이 고통받았던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난 계기가 되었다.
고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그 사이 노동부에 의한 업체 압수수색,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경찰도 압수수색을 비롯해 수사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전라남도도 실태조사 등 후속대책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행정당국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할 일만 진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를 비롯해 이 사건과 관련된 단체에 사건 경과과정 공유, 정책대안 의견수렴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행정당국간 업무협조도 삐걱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과 삶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행정당국만의 개별적 분산적 대응에 멈춰서는 안 된다. 이주노동인권사회단체, 노조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장밀착형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노동환경 및 인권실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이주노동자 지원 정책과 행정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억압적 노무관리, 괴롭힘으로 노동자가 고통받지 않도록 예방대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괴롭힘을 자행하는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벗어날 수 있도록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이주인권교육, 이주인권강사단 육성, 이주노동자 쉼터 등을 추진해야 한다.
경찰은 이번 사망사건과 관련해 철저하게 수사하고, 관련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사업주에 대한 구속수사를 통해 고인 이외에도 고통받았던 노동자들에 대한 수사가 전면 확대되어야 한다. 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이 사건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번 28세 네팔 청년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기계나 노예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 우리 이주인권 단체들 역시 앞으로도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5년 4월 3일 전국 이주인권 단체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