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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활동소식

[질문에 답합니다]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요?

By 2025.02.10No Comments

매주 토요일 광화문 윤석열 퇴진 광장에 “세상을 바꾸는 벽”이 세워지면, 광장의 시민들은 의견과 질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중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하라고 하고, 돈 든다고 개선도 안 해주는 회사에 화가 난 이야기. 노동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를 개탄하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김용균재단>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며 함께 고민을 나눠보려 합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중대재해 사이렌’을 통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다가 다치고 사망했는지를 알려주는 소식을 내고 있습니다. 발생한 사고를 즉시 알려서 유사한 재해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소식이 전파되기 시작한 2023년부터 현재까지 중대재해 사이렌이 울리지 않은 날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경우만 산업재해라고 하고 통계를 내보니, 2천63만여 명의 노동자 중 13만6천명이 아프고 다치고 죽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휴일이나 명절에도 일하는 노동자는 있다고 보면, 365일 동안 매일 매일 375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많이 아프고 다치고 죽을까요?

일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작업자 잘못이라는 말에도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서, 처음 하는 일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익숙하다고 조심하지 않아서, 술 먹고 일해서, 경각심이 없어서 등이 그것입니다.
뭐라고 이유를 붙이든 결국은 ‘작업자가 잘못해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말일 뿐입니다.
산재로 사망사고가 나면 작업자 탓이라고 말하기 가장 쉽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일상적으로 그곳에서 같이 일한 동료들은 회사 눈치 보느라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혼자 일을 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을 때도 회사는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김용균 노동자는 회사의 규정대로 점검해야 할 곳에 가서 떨어진 석탄을 긁어내는 일을 성실하게 했습니다.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혼자 해야 하는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을 때 컨베이어벨트에 대한 점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소리로 판단하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고 방호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위험할 때 나를 보호해줄 수단도 사람도 옆에 없었습니다.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해 컨베이어 벨트 외부에 설치되었던 덮개는 매번 작업 때마다 개방해야 하는 불편함을 이유로 제거된 상태였습니다. 김용균 씨와 동료들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위험한 환경에 계속 노출되니 물로 낙탄을 씻어내는 설비 설치를 요청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위험을 체감하고 불안해하는데, 회사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컨베이어 벨트는 김용균 씨의 목숨을 앗아갔고, 회사는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설비를 설치했습니다.

처음부터 회사가 노동자들이 작업하면서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는 부위에 방호조치를 하고,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설비로 교체하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하고, 작업시간을 여유있게 주면서 2인1조로 작업을 하게 했다면 김용균 씨는 올해 30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간혹 산재사망의 원인에 안전모 착용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작업자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작업자의 과실을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작업현장에 안전모 없이 들어오지 못하게만 해도 안전모는 모두 다 착용합니다. 또 착용하고 작업하는데 방해되지 않는 안전모로 마련해주면 됩니다. 그냥 싸고 흰 색인 안전모 말구요 통기성과 무게, 견고성까지 고려하여 구입하면 됩니다.

이처럼 작업자들이 문제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결국, 위험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개선하지 않는 것은 ‘회사’ ‘경영책임자’입니다.

작업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개인적으로 ‘조심’하는 것 뿐입니다.
살짝 언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를 생각해봅시다.
차량 자체적으로 체인시스템이 좋거나, 스노우 체인을 채우거나,
도로에 눈을 녹이는 열선이 깔려있거나,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거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운전자가 얼어있는 도로의 성격을 잘 알아야 하고, 아주 천천히 차를 몰며, 앞 차와의 거리를 넓혀서 이동해야 합니다.
산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호조치, 보호장구, 작업설비, 노동환경, 작업속도, 작업시간, 작업자 교육과 훈련 등이 모두 맞물려 있어야 위험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현실로 드러나지 않고 산재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 건 안타깝지만, 당장 회사가 있어야 일자리도 있고 돈을 벌고 경제도 발전해서 다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는 거꾸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이익을 많이 얻는 게 중요한 이유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몇 명이 잘 사는 게 아니라 내 능력껏 일한 사람은 그만큼 삶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내가 그린 웹툰으로 누군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 노동도 즐거워야 하는데, 우린 지금 그렇지 않습니다. 즐거운 노동, 행복한 노동은 없고 위험을 감당하며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노동만 난무합니다. 하고 싶을 때 일하는 프리랜서가 되면 된다는 말도 있지만, 하고 싶을 때만 일하는 프리랜서는 없다는 현실을 모를 때 할 수 있는 애기입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산재가 발생하는 원인을 줄여나가면 됩니다. 안전과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 회사 이윤의 한계점이 작업자들의 목숨과 안전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과 제도 마련, 경영책임자의 태도 변화 등이 얼어버린 눈길을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운전해야 하는 이들에게 스노우체인이 되고 열선이 될 겁니다.

산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들은 산재보상보험으로 충분히 치료받기를 보장받고 다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다시 돌아간 일터에서는 다친 몸과 마음을 고려하여 일을 배치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 가능하겠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는 마음의 방향을 먼저 모으는 게 필요할 때입니다. 노예가 없어질 거라고 확신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런 인간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시대를 바꿔갔습니다. 우리 같이 광장에서, 일터에서, 나의 SNS에서, 친구와 동료와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외쳐보면 좋겠습니다.

산재는 노동자 잘못이 아닙니다. “니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하지 마세요.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고 싶습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