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재단이 격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일터에 대한 이야기를 씁니다.
이번 글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으로 활동하는 이김춘택 님이 쓰셨습니다.
76회 글은 다른 글들처럼 기고글을 보냈으나 여러 이유로 온라인지면에 실리지못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글을 공개합니다. 더 많이 읽어주십시오.
인신매매, 취업사기, 강제노동으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대한민국
지난 8월 31일,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의 친구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오늘 갑자기 회사가 사무실로 불러서 퇴직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올해 초에 삼성중공업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다는 소식을 전하던 언론 보도가 떠올랐다. 이주노동자는 대개 하청업체에서 고용하는데 원청 삼성중공업이 직접고용 했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던 기억이 났다.
회사 사무실에 있다니 당장 만날 수는 없고, 핸드폰 번호를 받아서 통화를 했다.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는데, 통역을 담당하는 다른 스리랑카 노동자가 함께 있었다. 그가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일단 “회사가 사인하라고 해도 절대 사인하면 안 돼요. 사인하지 말고, 이따가 저녁에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해요”라고 말했다. 무슨 내용이든 절대 사인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거듭 반복해 강조했지만, 그 뜻이 잘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이 있는 삼성중공업 직원과도 잠시 통화를 했는데, 삼성중공업 직원은 그가 기능이 부족해서 더는 삼성중공업에서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개의 계약서
그날 저녁, 삼성중공업 기숙사 앞에서 그를 만났다. 다행히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가 함께 나왔다. 만나자마자 먼저 퇴직동의서에 사인을 했는지부터 물었는데, 사인을 했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절대 사인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오후 1시부터 3시간 넘게 사무실에 앉혀놓고 퇴직동의서 사인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인 못 하겠다고 거부했는데, 사인을 하지 않으면 불법이 되고 그러면 경찰에게 잡혀가서 구속될 수 있다는 말에 겁이 나서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렇게 사무실에 불려가 반강제로 퇴직동의서 서명을 한 스리랑카 노동자는 한 명 더 있었다. 특히, 다른 한 명은 그날 바로 김해공항으로 가서 스리랑카로 출국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황당하기도 하고 황망하기도 했다. 그는 다행히 2주 정도 한국에 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삼성중공업 기숙사에서는 바로 나와야 해서, 당장은 대구에 있는 친구 집에 신세를 질 거라고 했다.
이틀 뒤 대구로 찾아가 그를 다시 만났다. 그의 이름은 쿠마르. 삼성중공업에 취업해서 지난 3월 한국에 왔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 위해 스리랑카에서 노동자를 모집해 송출하는 에이젼시(라고 쓰고 ‘브로커’라고 읽는다)에게 6000달러, 한국 돈으로 약 800만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스리랑카 노동자 한 달 월급이 한국 돈으로 보통 15만 원 정도 한다니까, 800만원이면 스리랑카에서 약 4.5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그래서 어떤 노동자는 집과 차를 팔고 그것도 모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한 지 6개월도 안 돼서 쫓겨난다면 그 노동자는 어떻게 될까? 쿠마르는 미등록 노동자가 되더라도 한국에서 계속 일 해야지 이대로 스리랑카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쿠마르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인 2월 3일 스리랑카 현지에서 고용계약서를 썼는데, 한국에 들어온 뒤인 3월 16일 다시 고용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그 두 계약서의 임금이 많이 차이가 났다. 스리랑카에서 쓴 계약서에는 기본급과 고정수당을 합친 통상임금이 270만원이 넘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다시 쓴 계약서에는 공통급과 고정수당을 합친 통상임금이 이전 계약서의 기본급인 21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계약서에 있던 고정수당 60만원은 월 40시간의 고정 연장노동(OT)수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즉 한국에 와서 새로 쓴 계약서는 스리랑카에서 처음 쓴 계약서보다 통상임금이 60만원 이상 줄어든 것이다.
결국 쿠마르는 한국에 오기 전에 예상했던 임금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애초 계약서대로 월 40시간의 연장노동을 한다고 하면 연장노동수당을 포함해 348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새로 쓴 계약서대로라면 270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이처럼 이중계약서 작성에 따라 쿠마르가 받지 못한 돈은 월 78만원, 1년이면 약 900만원이 넘는다. 그가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지불한 800만 원을 갚고도 남는 돈이다.
퇴직동의서 서명강요 이유
그런데 삼성중공업은 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쿠마르를 해고하지 않고 퇴직동의서에 스스로 서명하도록 강요한 것일까? 삼성중공업이 직원이 말한 이유, 즉 쿠마르가 용접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쿠마르는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스리랑카에서 면접과 실기 검증을 거쳤다. 삼성중공업 관계자가 스리랑카에 와서 면접을 보고 실기 테스트를 통해 용접 기량을 확인한 후 고용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선박 품질 유지를 위해 각 조선소마다 자체 용접 자격증 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삼성중공업에 취업했다고 바로 현장에서 용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쿠마르는 삼성중공업에 취업한 뒤 용접 실기시험을 통해 삼성중공업이 발급하는 용접 자격증을 받았고 그 후에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처럼 스리랑카에서 그리고 한국에 와서 2번이나 삼성중공업이 용접 기량을 검증했으면서, 이제와서 기량이 부족하다고 해고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되기 힘들다.
미등록 노동자가 되더라도 스리랑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쿠마르와 이야기한 끝에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기로 했다. 또한,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임금을 깎은 것도 문제가 있으니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으로 진정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쿠마르가 삼성중공업의 연락을 받고 다시 거제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쿠마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8월 31일 저녁 처음 만날 때 같이 만났던 쿠마르의 친구에게 물어봤지만, 그도 쿠마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삼성중공업에서 쿠마르의 해고를 취소한 것은 아닌가 싶어 삼성중공업 글로벌인력팀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삼성중공업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그 뒤로 쿠마르와는 연락이 끊겼다. 다만,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딱 한 번 문자로 답장이 왔을 뿐이다.
“I work now .. no problem .. thank you for help me .. if I have problem I will contact again .. thank you ..”
호황을 맞고 있는 한국 조선업에 인력난이 심각하다. 조선업 직접 생산의 80% 이상을 하청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는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불황기에 조선소에서 쫓겨난 하청노동자가 다시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20~30년을 일해야 최저임금 조금 넘는 임금을 받는 조선소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핵심 정책은 기존 하청노동자보다 더 저임금인 이주노동자 고용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하청노동자 저임금 때문에 인력난이 심각한데, 그보다 더 저임금인 이주노동자를 노동시장 외부에서 대규모로 공급하면 저임금 문제도 인력난도 해결할 수 없을 게 뻔한데도 정부는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를 무슨 자랑인양 홍보하고 있다.
인신매매, 취업사기, 강제노동
그렇다면 그렇게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어떨까? 금속노조가 얼마 전 발표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조선소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인신매매’, ‘취업사기’, ‘강제노동’ 세 가지 말로 요약하고 있다. 특히 2021년 254명에서 2023년 5,470명으로 20배 가까이 늘어난, E7-3(특정활동) 비자로 취업한 이주노동자 문제가 심각하다.
‘인신매매’란 표현은 한국에 취업하면서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고액의 비용을 말한다. 금속노조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한국 취업과정에서 지불하는 비용은 적게는 쿠마르의 경우처럼 6000달러(약 800만원)에서 많게는 9000달러(약 1200만원)에 달한다. 이 비용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한다. 이 같은 고액의 비용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와서 어떤 부당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한국을 인신매매 2등급 국가로 분류해 발표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로 “이주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써 부채에 기반한 강압을 통해 때로는 수천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렇게 E7-3 비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취업하면서 고액의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주노동자 송출-송입 과정을 민간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주노동자라도 E9 비자의 경우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아, 송출-송입 과정을 국가간 MOU체결에 의해 국가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E7-3 비자 이주노동자의 경우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송출-송입 업무를 담당하는 각 나라와 한국 브로커들이 고액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사기’라는 표현은 본국에서 먼저 그리고 한국에서 나중에 이중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애초에 계약 내용보다 훨씬 낮은,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E7-3 비자는 기술이나 숙련을 인정하는 비자이기 때문에 법무부 규정에 따라 전년도 GNI(1인당 국민총소득)의 80% 이상을 통상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쿠마르가 2022년 GNI의 80%에 해당하는 270만원 이상으로 스리랑카에서 고용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법무부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임금으로, 대부분 최저임금으로 고용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있다. 임금이 대폭 삭감된 고용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싶은 이주노동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현실 앞에서 임금이 삭감된 고용계약서 서명을 거부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다.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은 이주노동자가 자유의사로 사업장을 선택하거나 옮길 수 없는 것을 말한다. E-9 비자 노동자도 법에 사업장 변경 가능 사유가 정해져 있고, 사업주의 동의가 없으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변경이 가능한 횟수도 3회로 제한되어 있다. 더구나 E7-3 비자 노동자는 사업장이 폐업해야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삼성중공업 또 다른 스리랑카 노동자처럼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강제로 퇴직하게 되더라도 바로 본국으로 출국해야 한다.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통해 법적으로 다투는 경우(이럴 수 있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다)에도 체류는 연장할 수 있지만 다른 곳에 취업은 불가능하다.
금속노조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소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응답한 이주노동자가 63.7%에 달했는데, 그 이유는 임금이 낮고, 작업장이 위험하고, 노동강도가 강해서였다. 이는 수많은 정주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나는 이유와 같다. 이처럼 조선소를 떠나고 싶어 하는 이주노동자가 많아지자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권역별로만 허용하거나 같은 업종으로의 변경만 허용하는 등 그 제한을 더욱 강화하고 나섰다. 그러나 저임금과 고강도 고위험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법으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으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부디 건강하게 돌아가길
쿠마르는 잘 있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삼성중공업 글로벌인력팀은 모른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삼성중공업에서 다시 일하고 있을까. 아니면 삼성중공업 하청업체로 옮겨서라도 다시 일하게 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미등록 신분이 되어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모르는 불안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디선가 계속 일하고 있을까.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6천 달러를 지불하면서 생긴 빚은 얼마나 갚았을까.
부디 몸과 마음 상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돈을 모아서 건강하게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