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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라디오 YTN] 인터뷰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19년 11월 2일 (토요일)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어느새 2019년도 달력 2장만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우리 사회를 일깨워준 말, 위험의 외주화. 혹시 기억하십니까? 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들이 계속됐고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죠. 이 법에는 아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한 청년의 이름이 붙었는데요. 바로 故 김용균 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법을 ‘김용균법’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지난달 26일입니다. 일주일 전인데요. 故 김용균 씨의 이름을 딴 재단이 출범했습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여사가 초대대표를 맡게 되셨는데요. 오늘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이하 김미숙)> 안녕하세요.

◇ 김양원> 작년에 아드님 사건이 일어난 후 재단 출범까지 거의 1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참 바쁘게 뛰어 다니셨죠?

◆ 김미숙> 네. 투쟁 끝에 합의를 했고, 잘 이행되는지 지켜보려고 구미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연대 활동도 계속 해왔고, 또 특조위 진상조사 진행 과정도 지켜봤고요. 그러면서 4월부터 김용균재단 출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김양원> 직접 재단 출범 준비를 지난 4월부터 하시다가 10월 26일 드디어 재단이 출범을 한 거군요. 제가 김용균재단 설립 목표를 봤어요. 그랬더니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는, 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더라고요. 이게 김용균재단 출범을 결심하신 계기가 아마 있었을 텐데요.

◆ 김미숙> 산안법이 통과가 되었지만,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어서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하지 않은 사고를 막고 싶어서 생각을 했습니다.

◇ 김양원> 지금 말씀하신 대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해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는데, 산안법이라고 하죠. 개정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나아지는 건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올해만 들어서도 지난 9월에 지하철 선로 작업 중에 외주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요. 또 불과 며칠 전입니다. 지난달 22일에는 충북 제천의 시멘트 공장에서 안전보호구도 없이 300도 넘는 고열의 송풍기에 빨려 들어가서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계속되는 산재를 지켜보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세요?

◆ 김미숙>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고 산안법은 통과시켰지만 그 법이 너무 협소하게 통과되면서 안전하지 않아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이 더욱 늘어나면서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되고 있고,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도록 법은 허술하게 만들어져서 더욱 더 현장은 열악하고, 안전은 방치되고 있고, 그래서 다치고, 죽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답답한 현실입니다.

◇ 김양원> 지금 김용균재단이 몇 분이나 같이 활동을 하고 계신 거예요?

◆ 김미숙> 저희 상근 활동가님 한 분이 더 계십니다.

◇ 김양원> 그러면 대표님과 활동가 분 한 분. 너무 단출한데요?

◆ 김미숙> 앞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저희하고 연대하는 분들하고 같이 의논하고, 협동을 해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 비정규직 철폐 운동이나 그 사고 당한 유가족을 찾아가서 손잡아주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해서 사회의 여러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을 시켜줘서 잘 되도록 만들어주고 싶어요.

◇ 김양원> 산재 사망사고, 혹은 산재사고를 당한 다른 가족들을 지원하는 일도 하신다고 하셨는데, 막상 제일 중요한 게 이 부분이잖아요. 이렇게 그런 사고를 당해보셨지만, 그런 사고를 당하고 나면 가족들이 경황도 없고, 사고조사나 이런 데 가족들의 참여할 수도 없죠?

◆ 김미숙> 보통 우리가 사고를 당하면 제일 큰 문제가 사고 당한 본인이 잘못했다고 책임을 묻고 있어요. 경찰이나 고용노동부, 이 사람들은 유가족의 입장에서 사고 조사를 하지 않고, 기업의 입장에서 조사를 하기 때문에 더 유가족이나 사고 당사자는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용균이 그렇게 사고를 당했을 때 기업 쪽이나 경찰이나 고용노동부가 저희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요.

◇ 김양원> 그래서 재단에는 후원금으로만 운영을 하시나요? 아니면 정부의 지원이 조금 있나요?

◆ 김미숙> 저희는 정부하고 손잡지 않았어요. 정부하고 하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해줘야 할 수밖에 없을까 봐 우리 독립적으로 그냥 하기를 원했고, 우리가 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 운동이나 이런 것들이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쟁취하기 위해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 후원으로 조직하고 있고요. 후원하는 사람들이 직접 활동을 하고, 이 재단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김양원> 외부의 어떤 지원도 거절하시고 일단은 자발적인 후원금을 통해서만 김용균 재단을 운영하고 계시다, 이런 말씀이셨고요. 이제 다음 달이네요. 12월이면 아드님, 김용균 씨 1주기가 된다고 제가 들었어요. 마음이 더 착잡하시겠죠.

◆ 김미숙> 아들이 저를 많이 닮았거든요. 그래서 생각이나 행동, 피부, 감성, 이런 것들이 다 저를 닮았기 때문에 꼭 제가 죽은 것 같아요.

◇ 김양원> 용균 씨가 나는 엄마를 닮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면서요?

◆ 김미숙> 용균이는 제가 어느 날 물어봤어요. 너는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어요. 크게 잘된, 본받을 사람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생각도 오래 하지 않고 바로 엄마를 닮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 김양원> 그만큼 엄마하고 뭔가 잘 통했나요? 엄마가 멋진 사람으로 보였나요?

◆ 김미숙> 저는 회사 갔다 오면 애한테 제 얘기를 다해줘요. 그래서 서로 말이 잘 통하고, 말도 가리지 않고 다 잘 하면서 친구 같이, 엄마 같이 그렇게 지냈어요. 아주 좋은 사이였고요. 그냥 서로 말을 안 해도 그게 다 느껴질 정도로 아주 좋은 사이였어요.

◇ 김양원> 지금 이렇게 용균 씨의 이름을 딴 김용균 재단의 대표가 되어 있는 엄마를 보면 용균 씨가 뭐라고 할까요?

◆ 김미숙> 제가 용균이한테 제일 미안한 게 죽음을 막지 못한 것, 손 놓쳐버린 것, 그게 제일 가슴이 아파요. 그렇지만 용균이 재단을 만들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서 사람들의 죽음을 막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아들이 조금 용서를 해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애한테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는데요. 이거를 우리 아들이 옆에서 본다면, 우리 엄마니까 이렇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얘기할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 아들은 저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으니까. 그래서 정말 제가 죽어서 아들을 만난다면 이런 말을 꼭 들어보고 싶어요.

◇ 김양원> 엄마니까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거야, 엄마 잘하고 있어, 이런 말을 제가 보기에는 용균 씨가 하고 있을 것 같고요. 그렇습니다. 아까 김용균 재단을 통해서 비슷한 산재 사고를 당하신 다른 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인터뷰 전에 제게 이런 말씀도 해주셨잖아요. 제가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여쭤봤더니 사실 저는 우리 아이를 잃은 후에 삶의 이유가 없어졌어요, 하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이 김용균 재단을 통해서 다른 분들에게,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가족들에게 삶의 이유가 되어 주시면 어떨까 하는 마지막 당부를 드려봅니다. 어떠세요.

◆ 김미숙> 정말 제가 용균이 사고가 나고 제가 어떻게 살까, 이제 삶의 목적이나 이유도 없고,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할지. 그래서 세월호 가족 중에 애가 하나밖에 없는데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어요. 그분한테 제일 묻고 싶었던 게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제일 궁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