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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보도자료자료실

[성명서]왜곡된 인식부터 바로 잡으라!

By 2021.05.186월 3rd, 2021No Comments
[성 명 서]

산재처리지연문제, 근로복지공단 강순희 이사장의
왜곡된 인식부터 바로잡으라!

산재처리 지연으로 인한 산재노동자들의 고통과 처리기간 단축에 대한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전체 업무상질병의 70%를 차지하는 근골격계질환의 평균처리기간이 4개월이라는 암담한 현실을 더는 방치할 수 없기에 노동자들은 작년부터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고 지금도 근로복지공단 본부와 고용노동부청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근로복지공단 강순희 이사장이 지난 5월 3일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 드러났다. 강 이사장은 “무분별한 산재신청이 처리지연을 유발하고 있는 만큼 그간 사례를 토대로 상병별, 질병별 데이터분석을 통해 산재인정 기준을 제시하고 적극 홍보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먼저, 무분별한 산재신청이 처리지연을 유발한다는 발언의 심각성은 스스로도 인지했는지 인터넷판 기사에서는 삭제되어 지면판에만 남아있다. 이 발언은 산재보험 운영에 있어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강 이사장이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현실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만든다. 2016년 발표된 논문 <산재보험의 의료보장성 평가> (박지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에 따르면 산재처리 비율은 평균 24.1%~34.3%로 추정된다. 산재를 당한 10명 중 3명 정도만 산재신청을 하고 있는 현실은 산재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제는 상식이 되어있다. 70%의 산재노동자들이 모르고, 블편하고, 불안해서 산재신청을 하지 않는 현실에서 ‘무분별한’ 산재신청이 처리지연을 유발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 오히려 산재보험의 접근성을 높여서 숨어있는 수많은 산재들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산재인정 기준을 몰라서 승인되지도 않을 상병을 신청하기 때문에 산재처리 기간이 길어지니 인정기준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된다는 인식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이어서 강 이사장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산재인정 기준을 제시하고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산재보험의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되어온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공단이 자의적으로 산재인정 기준을 정해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소송을 통해서 산재로 인정을 받은 사례들이 수없이 축적되었지만, 공단은 이러한 결과들을 반영해 지침을 수정하는 데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런 공단이 데이터분석을 통해 산재인정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또 어떤 혼란과 행정낭비를 초래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인터뷰에서 강 이사장은 노동복지허브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산재처리 기간을 연내에 1개월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재해조사프로세스의 개선, 판정위원회 및 업무관련성 특별진찰제도 효율성 제고 등이 구체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이는 현행 제도를 손대지 않고 각 단계의 속도를 조금 끌어올린다는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는다. 유행도 한참 지난 빅데이터가 이러한 효율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이지만, 강 이사장이 산재처리 지연의 원인을 무분별하게 산재를 신청하고, 산재인정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탓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의미있는 변화는 불가능하다.

강 이사장과 근로복지공단은 계속되는 산재처리 지연문제 해결요구를 악성 민원 취급하며 동문서답을 반복하고 있다. 산재보험 제도 개혁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추정의 원칙 법제화와 적용범위 확대, 즉시 인정기준 확대, ‘선 보상 후 정산’으로의 제도적 전환 등이 그것이다. 강순희 이사장은 미봉책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현행 산재보험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본인의 잘못된 현실인식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21. 5. 18

노동건강연대/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사단법인 김용균재단/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일과건강/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새움터/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